
이번에도 어김없이 <종소리>도.. <싯다르타>도 아닌
갑분 다른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 또한 책장에 십여 년 꽂혀있었는데
좀 다른 점이라 한다면
읽었던 책이라는 것!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당시가 20대 초반이기도 했고,
읽었을 그 당시에도 어쩐지 대충 읽은 느낌이라
머릿속에 남지 않는 것 같았다.
분명 읽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찝찝함과
요즘 들어 추천 도서로 언급하는 영상들도 많고 해서
다시 읽어볼까..?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이렇게 빨리 읽을 생각은 없었는데...
뭐...... P인간은 가능하죠...

[책 소개]
촌 마을을 전전하며 민요를 수집하며 먹고살던 화자가
한 마을에서 소 한마리에게 여러 이름으로 불러대며
함께 밭일을 하는 노인 '푸구이'를 만나게 되고
'푸구이'로부터, 그의 삶을
담담하게 듣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노인 '푸구이'의 일대기를 담은 이야기이다.

[리뷰] * 스포 포함
이 책은 나이가 들면서
실패와 고난도 제대로 겪어보고
세월의 때도 좀 묻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도 해보고
더 나아가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도 여럿 경험해봤을 때,
그리고 그런 불행 속에서
정신과 육체를 추스를 시간도 없이
다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야 하거나
혹은 그랬던 사람들이 보면
받아들이는 무게감이 다를 것 같다.
특히 시대상이 시대상이니 만큼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 세대가 보면
더 크게 와닿을 이야기이다.
나 또한 분명 읽은 책인데도
왜 기억에 안 남았을까? 생각해 본다면
그 당시 내 나름의 삶의 애달픔과
힘듦은 있었겠지만 너무 어렸다.
내 현실 속, 내가 겪고 있는 일이
가장 크게 느껴질 때라
소설 속 허구의 인물과, 상황들이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 다시 재독 했을 때는 눈물이 났다.
사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분노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푸구이의 젊었던 시절 그 방탕했던 생활,
집안을 말아먹는 것도 모자라서
당당하게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장인에게 보여주고,
도박에 빠져 무릎 꿇고 집에 가자는 아내를
무시하고, 사람을 시켜 끌어내고
심지어는 패버리기까지 하는
'저 쓰레기 같은 인간의 얘기를
계속 들어야 하는 거지?' 하면서 괴롭게 봤다.
심지어 자기 자식에게까지
혹독하게 굴었던 푸구이를
그래도 그나마 참으면서 보았던 건
늙은 '푸구이' 시점이라, 그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았다.
자신의 과거를 한심해하고,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근데 그럼 뭐 하냐고..
이미 가족들은 다 떠나고 없는데.
그런 생각으로 지금껏 살면서
푸구이가 최악의 선택만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더 큰 최악의 순간을 비껴갔던 내용이 나온다.
그냥 어쩌면, 푸구이의 운명은
그가 그렇게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고,
도박으로 집안도 말아먹지 않고
그의 아내만 바라보고,
자상하고 좋은 아빠로 지냈어도
결국엔 비슷한 결과를 맞이했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선택으로만 최악으로 가는가?
아니,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시대가, 환경이, 상황이
나를 최악으로 만들 수 있다.
푸구이는 처음엔 본인의 선택으로
최악을 향해 갔지만
나중에는 시대가, 환경이, 상황이
자꾸만 그를 최악으로 몰아갔다.
-
푸구이는 결국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재산과 명성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 모두를 다 잃었다.
그럼에도 푸구이라는 노인은
오늘도 노래를 부르며
자신과 비슷한 서글프고도
기이한 운명을 가진
소 '푸구이'와 살아가고 있다.
책 초반에 나왔던 문장 하나가
책을 다 읽은 시점에 나를 사무치게 했는데,
[푸구이 노인처럼 잊히지 않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그처럼 또렷하게,
또 그처럼 멋들어지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말고는 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젊었을 때 살았던 방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늙어가는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푸구이는 또렷하게 기억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절대 회복될 수 없는 아픔을 지니고도
오늘을 살아가는 늙은 '푸구이'가 어쩐지
안쓰럽기도 했다.
지난날을 후회하며 복기한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저 앞으로의 내가 그 후회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푸구이는 오히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마지막까지 남아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남아있는 삶만 그저 묵묵히
살아내다 가버리면 그만인 상태라
그는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그렇게 그는 오늘도
소 '푸구이'에게
아내의 이름으로, 아들의 이름으로
딸의 이름으로, 사위의 이름으로
손자의 이름으로도 불러보며 살아낸다.

나 또한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된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불현듯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좀 더 잘해줄걸,
좀 더 연락 자주 할걸,
좀 더 자주 볼걸.
내가 이때 이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 때 저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곱씹고 괴로워한다
그러면서도 또 살아내야 하는
운명으로 살고 있다.
위화는 말한다
그냥 이게 삶이라고.
이게 운명이라고.
그러니 그냥 살아가라고.
소설 속 허구의 인물에게
이처럼 위로를 받은 게 오랜만이라
표지는 빛에 바랬어도
속은 그대로인 것처럼
계속 남아줬으면 하는 책이다.
내 책장이든, 내 마음속 어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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